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달란트는 ‘음악’

기사입력 2020.04.15 09:17 조회수 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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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원진 커피.jpg

CCM 가수 팽원진 목사

부산 사투리에 교회오빠로 보이는 팽원진 목사는 찬양사역자로 섬기면서 달란트문화센터 대표를 맡고 있다. 2008년 목사 안수를 받았다.
그는 진주에서 목회하고 있었던 부친 팽철수 목사(영남노회) 상문교회 부교역자로, 외국인근로자 및 다문화 성도들을 섬기는 선교단체 담당목사로 섬기다가 서부 경남의 큰 부흥을 꿈꾸며 2014년 진주의 중심지 촉석루 앞 약 22평의 상가를 얻어 개척했다.
12평의 작은 공간속에는 주방과 화장실 서재, 작은 예배당이 전부였다. 성도 한 명 없이 가족끼리 처음 시작한 개척은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큰아들은 할아버지 댁에 맡겨 놓고, 유치원에 다니는 막내와 사모 이렇게 세 식구가 서재로 쓰는 방에 이불과 전기장판을 놓고 개척과 생활이 시작됐다.
하지만 개척 후 1년쯤 된 어느 날 교회건물이 경매로 넘어간다는 창원지방법원의 통보를 받게 됐다. 어렵게 시작한 개척 목회였던 그는 2차, 3차 계속 경매의 소식이 날아 올 때 눈앞이 캄캄해 졌다고 그 당시 상황을 고백한다.
당시를 떠올리던 팽 목사는 평범한 직장인의 삶을 버리고 선택한 신학의 길, 그리고 고향이 아닌 타지에서 복음을 위해 기도하며 달려온 목회자의 길은 절망적임을 느꼈을 때 그 동안 헌신했던 일들을 떠 올리며 아픈 상처로 많은 원망을 털어놓았다고 한다.

 
‘아!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달란트는 음악이구나’

하지만 어려운 상황에서 기도하던 중 마태복음 25장 ‘달란트비유’에 대한 메시지가 머릿속에 계속 맴 돌았다. 특히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받아 남겨서 칭찬받은 종들보다 한 달란트 받은 종에게 계속 마음이 쓰였다. 그때부터 그는 고민을 하며 묵상하기 시작했다. “내가 만약 오늘 하나님 앞에 선다면 세 부류의 사람 중에 누구에게 속할까? 나는 남긴 것 주님 앞에 내어드릴 달란트가 있을까? 그리고 2차로 고민했다.
그렇다면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달란트는 무엇일까?” 그러다 그 때 문득 머릿속으로 떠오른 생각이 고등학교시절 활동하던 ‘실로암중창단’이었다.
음악적인 재능이 있어 테스트를 거쳐 중창단에 들어가고 활동도 했지만 토요일에 항상 연습이 있어 친구들과 한창 어울려 놀고 싶은 마음에 2학년 중반기에 탈퇴 하고 그 재능을 묻어 놓고 있었던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목회사역하면서 찬양을 인도하거나 특송을 할 때면 주변의 사람들로부터 찬양사역을 해보시는 건 어떠냐는 말을 종종 듣기도 했다. 그러나 그때마나 목회자에게 찬양을 잘 한다는 말에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목회를 잘하는 목사가 되고 싶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것은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사인이었다.
부흥도 중요하지만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서 하시고자 하는 일부터 우선순위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해야 한다는 깨달음이 온 순간 순종하기 위한 몸부림을 쳤다.

 
국제바리스타협회 코치마스터로 변신
그렇게 개척교회는 계약기간을 채우기도 전 소정의 금액을 받고 나올 수밖에 없었던 그는 개척당시 강의 나가던 신학교의 학생 중에 하동 '양탕국 커피 문화원' 대표가 떠올랐다.  
핸드드립이 일본식이라면, 에스프레소머신은 이탈리안, 유럽식이고 한국적인 정서에는 숭늉이나 탕을 마시는 것처럼 사발커피가 맞다.
'양탕(서양의 탕: 커피를 이르는 한자말)'은 그래서 ‘사발커피’를 이른다고 한다. 이 커피마을은 ‘대한제국을 담다’는 모티브를 가지고 있다. 대한제국 고종이 처음마신 ‘가비’를 연상해 ‘사발커피’를 마신다는 커피문화원을 방문하여 핸드드립커피를 경험하고서 그는 커피의 맛과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되었다.
양탕국 대표에게서 드립커피를 집에서 내려먹는 법을 간단히 배운 후, 1년 정도 집에서도 내려 마시고 교회를 찾아오는 손님들에게도 대접을 해오면서 커피와의 인연을 맺게 되었고 핸드드립커피가 팽 목사에게 익숙해졌다.
이후 그는 진주 내동에 위치한 ‘Dr. eams’카페를 오픈했고 그의 진솔한 커피 맛에 단골손님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밤 12시까지도 근무할 때가 있었다. 카페 한 구석에 피아노와 기타는 다시금 그를 노래하는 목사로 만들어 주었다. 독학으로 반주와 노래를 부르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부르던 노래가 노랫말이 되었고 눈을 감고 주님을 향한 감동으로 부른 노래가 생전 해 본적 없는 작사. 작곡을 하게 되었다.
2달란트 5달란트 맡은 종들에게 하신 주님의 칭찬이 떠올랐다.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내가 가진 작은 것을 주님께 드리고 싶은 마음은 나에게 주신 달란트를 '발견'하고 '개발'하고 '사용'하자”
그렇게 커피와 음악은 그의 꿈과 비전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커피와 음악은 그의 꿈과 비전을 바꾸다
팽 목사는 커피와 함께 신앙에 대한 열정에 대해 “커피는 과육을 버리고 생두를 사용하는 독특한 열매죠 녹색 무취의 열매, 하지만, 로스팅을 통해 갈색으로 바뀌고 향기를 머금으며, 커피밀에서 으깨어지고 가루가 되고, 90도가 넘는 물을 통과하면서 커피 한잔이 추출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세상의 소금’되라고 하셨습니다. 소금이 맛을 잃으면 길거리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밟힐 뿐이라고 하셨죠. 카페스타일의 용어로 재해석 하면 ‘우리는 세상의 커피다’ 그 맛과 향기를 잃으면 밖에 버려지는 것” 이라고 말이다.
그는 바리스타로 활동하면서도 그는 꾸준히 진주지역의 문화행사인 ‘달란트 문화 Festival’을 2회째 진행하고 있다. 이 행사 또한 하나님께서 때에 따라 동역자를 보내주시어 각 분야에서 섬길 분들을 보내주셨음을 고백하고 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의 말씀만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이루시는데 물질과 사람도 필요한 만큼 다 보내주신다. 팽 목사는 이외에도 하나님께 받은 달란트를 발견하게 하고, 훈련시켜서 잘 사용한 후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하고자 비전을 품고 각자의 달란트 개발로 말미암아 섬기는 교회에서 문화사역으로 일꾼들도 부족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문화센터와 모임이 가능한 50평정도의 공간이 필요하다고 하나님께 기도드리는 가운데 진주 모 교회 목사님께서 “팽 목사님, 우리교회 1층에서 카페를 한번 해 볼 생각이 있으신지요?” 2층을 예배당으로 1층으로 카페 공간으로 인테리어를 하셨다며 팽 목사에게 제안을 한 것이다. 하나님의 방법으로 일 하심을 또 한 번 경험했다. 이로써 교회와 카페가 공존하는 음악공연이 가능한 ‘나눔 카페’의 청지기로 세워지면서 달란트문화센터가 세워졌다.
틈틈이 작곡한 곡들로 2019년 5월에 ‘우선순위’라는 정규 음반을 발표하고 찬양사역자로 달란트문화선교회 대표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바리스타에 대한 자격증을 넘어서 국제바리스타협회에 자신의 논문을 기재하여 교재 삽입 추출부분에 사용되고 있으며 코치로 활동하며 곳곳에 크리스천 바리스타를 양육하며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창원극동방송 ‘정오의 찬양’ 진행자로 섬기고 있으며, 올해 2월 진주 상문교회에 부임 받아 목회자로 주신 달란트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다.

[나경화 기자 qoghd1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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