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식 목사의 절대음계 - 악보대로 정확하게 2

기사입력 2020.07.13 15:26 조회수 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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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식 목사.jpg

“하나님이여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여 피 흘린 죄에
서 나를 건지소서! 내 혀
가 주의 의를 높이 노래
하리이다. 주여 내 입술을
열어주소서. 내 입이 주를
찬송하여 전파하리이다.”
(시 51: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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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548장 날 구속하신주.jpg

잠잠해지는 듯하다가는 다시 긴장을 조성하길 반복하는 코로나 19의 현장 속이라도, 신앙인은 하나님 앞에서 사는 것임을 확실하게 고백하는 교단 산하 장로합창단이 연습을 다시 시작했다. 그동안 연습일정을 감당할 수 없으면서 가졌던 생각과 재개된 상황을 지난회기 총회의 부총회장으로 수고를 아끼지 않은 한 장로님의 맛깔스러운 글에서 인용하여 소개한다.

“(전략) … 다가올 9월에 전국장로회연합회부부수련회와 교단 총회를 위해 두 곡을 준비한다.

‘내 영혼이 은총 입어’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를 지휘자는 음정 하나하나를 챙기며 열정적으로 지도한다. 많이 부른 곡이지만지휘자만 보고 부르려니 자신감이 안 생기고, 악보만 보고 부르려니 지휘와 박자가 서로 맞지를 않는다. 어느 틈엔가 많은 장로님이 고백한다. “악보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이리도 작아지는지…

”이 순간만큼은 음대를 가지 않은 게 너무너무 후회되는 대목이다.그래도 우리나라 최고의 지휘자에게 배운다는 게 얼마나 큰 영광인지 모른다.오늘 연습한 곡조의 가사가 너무 아름답다.‘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사랑! 주의 보혈 있는 그곳에 희망이 있다네…

’가사를 살리는 것은 역설적으로 가사로 다 표현하지 못하는 곡과 음정의 선율에 있다. 들숨과 날숨의 조화로운 선율을 잘 이어 나갈 때, 음악은 생명력을 갖는다.‘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하라’는 말씀처럼,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영원히 찬양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시다. 그분께서는 찬양을 받으시기 위해 사람을 지으시고 코에 생기를 불어 넣어셨으니, 들숨과 날숨이 하나님 찬양을 위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한 이 땅에서의 삶을 보장받는 것이다. 찬양은 연습이 아니라 부르고 올려드리는 그 자체가 찬양이다. … (후략)”(김우환 장로의 아침 단상, 2020. 7. 7)

음악의 3요소인 멜로디, 화성, 리듬 중에서 유난히 리듬 조작을 많이 하는 이유는 리듬은 인간의 맥박이나 호흡과 관계가 있어 신체상태를 유도할 수도 있다. 또한 음악의 모든 요소는 진행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이 속성을 어기면 연주자나 듣는 이가 편안함이 없게 된다. 우리 음악에서는 장단이라 표현하고, 서양음악에서는 템포라 할 수 있는 진행은 몰입을 위해 만든 것이 아니다.

예배나 집회의 음악인도자들은 어떤 곡들을 아주 느리게 시작하여 점점 빠르게 부르도록 인도(유도)하며 더 이상 빠르게 부를 수없을 때까지 하는 가창 방식을 취하기도 한다. 하나님이 주신 샘솟듯 하는 은혜는 찬양의 빠르기와 상관이 있을 수 없다. 물론 느린가운데서도 평화를 느낄 수 있지만, 숨쉬기조차 어려운 빠르기도 평화를 경험할 수도 있다. 또 다른 경우는 먼저 일어설 것을 요구하는 인도자도 만나게 된다. 그러나 외적인 통일이 내적인 통일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음악적 변화가 성령의 역사하심과 같은 것도 아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찬송은 언제나 성령이 활동을 기대하는 여유가 있어야 한다. 따라서 우리가 사용하는 찬송가는 자세히 살피면 많은 정보가 기록되어 있지만, 메트로놈 표시 등의 빠르기에 대한 지정이 없다. 또한 악보 부분 부분에 악상을 표시하지도 않는다.

이것은 찬양의 힘보다 음악 자체의 힘에 맡기는 결과를 최소화하려는 노력인 동시에 다양한 환경과 경험을 가지 회중에게 개인의주관적 경험의 가치를 주장하는 오류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필자가 조국교회의 예배와 찬송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악보대로 정확하게”찬송을 부르고 연주하도록 지도하는 사람과시간이 부족한 것이다. 이에 대한 현실적 대안의 한 부분으로 지교회에서 오랜 세월 섬김의 종으로 삶을 살아낸 여러 장로님들과 교회음악 또는 예배음악의 모범을 보이고 싶어 걷는 걸음이다. 적지 않은 어려움 속에 다시 시작한 장로찬양단의 여정 가운데 임마누엘의 은혜로“악보대로 정확하게”찬송하는 훈련과 찬송작업을 통해 총회의 모든 교회와 성도들에게 선한 영향을 마음껏 끼치고 싶다.

[뉴스세븐 기자 mdwpdntm@dreamup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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