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사역자 / 전용대 목사 - “주님 부르실 때까지 찬양 사역자로 살겠습니다”

기사입력 2020.09.29 11:20 조회수 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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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사역자로 40년을 넘게 사역해온 전용대 목사는 그동안 30개 앨범을 발매했고 지난해에는 40주년 콘서트를 열기도 하였다. 한국교회 부흥의 시절과 한국복음성가의 역사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을 말한다면 가장 먼저 전용대 목사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40년 넘는 동안 찬양사역 외길을 걸어온 전 목사는‘주여 이 죄인이’‘주를 처음 만난 날 ’‘탕자처럼’‘똑바로 보고 싶어요’‘할 수 있다 하신 이는 ’‘용서하소서’‘ 나의 본향집’ 등을 발표했다. 작년 40주년콘서트를 마치고 올해도 어김없이 초청 집회와 함께 찬양 콘서트, 버스킹 등을 준비하던 중 코로나19로 현재 잠정 보류된 상태라고 한다. 그래도 라디오 방송과 함께 유튜브 ‘전용대TV’를 통해서 소통을 계속적으로이어 나가고 있다. 31번째 앨범을 준비 중이라는 전용대 목사와 이야기를 나눠봤다.

 

Q. 복음성가 가수의 길은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된 건가요.

A.“어린 나이에 학생 신분으로 트로트 가수로 데뷔했습니다. 그러다 장애를 겪으면서 장애의 아픔으로 인한 절망으로 죽음의문턱에까지 이르렀다가 주님을 만나게 됐습니다. 몸이 아파 헤맬 때 목사님 말씀에 순종해 오산리최자실기념금식기도원을 찾아갔습니다. 영의 어머니셨던 ‘할렐루야 아줌마’최자실 목사님의 명령으로 금식기도를 통해 치료와 방언을 받았습니다. 부모님께서 항상 말씀하신 ‘은혜를 잊어선 안 된다. 감사를 잊어선 안 된다’를 순종하기위해 최 목사님을 찾아가 어떻게 은혜를 갚아야 하는지 여쭤봤습니다. 노래하는 사람이라고 했더니 금요일마다 기도원에 와서 찬송가를 부르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순종하는 마음으로 10여년을 섬겼습니다. 이후 죽을 수밖에 없는 저를 구원해 주신 예수님의 사랑에 감사할 수밖에 없었고, 주님을 더 알고 싶어서 신학을 공부했습니다. 거기에서 만난 작곡가를 통해 선교용 성가곡을 부르면서 복음성가 가수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Q. 복음성가 가수가 없는 시절에 어려움이 많았다 들었는데요.

A.“트로트 음악을 했던 저로서는 찬양을 더 잘 부르고 싶어서 지인을 통해 모 방송국 노래선교단에 입단했습니다. 대부분이 전공자로 구성됐기에 그 사이에서 말할 수 없는 힘든 일들을 겪었습니다. 당시 동료로서 지금은 목회하고계신 목사님께서 그때는 저를 이해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어려움과 수모를 참아내는 모습이 이해가 안 됐는데 훗날 전국으로 또 해외로 활동하는 모습을 보며 ‘이렇게 사역하려고 그때 견뎠구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랬다’고 답을 했습니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당시 석송 피디님과 선교단 동료들의 협력, 도움으로 첫 정규앨범‘탕자처럼’을 발표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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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목사님 대표곡이라 꼽을 수 있는‘주여 이 죄인이’‘주를 처음 만난 날’은 어떻게 해서 나오게 됐는지요.

A.“‘탕자처럼’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2집 발매의 권유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바로 작정 기도에 들어갔는데 어느 금요일 인천순복음교회 철야예배 간증을 부탁받고 교회로 가게 됐습니다. 교회에서 어떤 자매님이 특별찬양을 하시는데 어딘가 낯익은 멜로디라 생각하게 됐습니다. 집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계속해서 그 찬양이 머릿속에서 맴돌며 ‘어떻게 이 가사가 나의 이야기를 말하고 있을까?’를 계속 생각했습니다. 바로잠자리에서 일어나 기도를 하기 시작했는데, 기도 중에‘이곡은 너를 위해 준비한 곡이다’라는 음성을 듣게 됐습니다. 밤새 잠을자지 못하고 이튿날 그 자매님을 수소문해 작곡자를 찾아갔습니다. 그렇게 지금의 안철호 목사님께 상황을 설명해 드리고 ‘주여 이 죄인이’를 받게 됐습니다. 또 평소 친분이 있는 지인께서 알고 계신 곡 쓰시던 분이 계셨는데 저와 잘 어울릴 것 같다고 소개해주셨고 그분이 섬기는 교회로 갔습니다. 자리에 앉아 기도하는데 찬양 소리가 들려서기도를 멈추고 눈을 뜬 순간 나를 위한 곡이라는 생각을 했고, 예배가 마치자마자 저에게 주시면 감사하겠다고 부탁드렸습니다. 그 곡이 바로‘주를 처음 만난 날’입니다. 그렇게 김석균 목사님과 인연이 됐고 훗날 김 목사님 곡을 가장 많이 부르며‘바늘과 실’이라는 이야기도 듣게 됐습니다.”

Q. 길보드 차트 1위라는 가요 앨범을 제치고 비매품이 제일 많을 정도로 목사님 앨범은 발표될 때마다 사랑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래서 굉장한 부자로 아는 분들이 많다고 해요.

A.“믿기 어렵겠지만 집 한 채 없는 상태입니다. 현재 타고 다니는 차가 오래돼 바꾸려했는데 할부금을 낼 자격이 안 된다고 거부당하기도 했습니다. 이전 음반 수익금은 제작자가 다 가져갔습니다. 때론 힘들 때‘제대로 계약을 해야 했는데’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조차도 감사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지금은 재정이 허락되면 어디에 써야 할지 알지만 어린 나이에는 조금 흔들렸을 거라 생각합니다. 처음 사역할 때는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을 참 많이 했습니다. 식당에 가서 밥 먹고 밥값을 지급했는데 느낌이 이상해서 뒤를 돌아보면 목발 짚은 사람이 첫 손님이라 재수 없다고 소금을 뿌리기도 했고, 커피숍에 가면 제가 거지인 줄 알고 동전을 주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돈을 벌어 복수하겠다는 생각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수많은 장례식 조가를 부르게 하실 때‘잘 살아야 한다. 잘 죽어야 한다’를 결심하게 하셨고, 집회 강사비와 후원비로 생계를 유지했기에 그것들이 나 자신의 돈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고 나눠 사용하는 일들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내와 고2, 중1 두 딸이 있고 어려운 사람들을 보면서 물질의 필요성을 느낍니다. 요즘은 하나님께서 주신‘만나’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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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어떤 기도 제목과 비전이 있으신지요.

A. 처음 주님께 약속한 주님이 부르실 때까지 찬양 사역자로 끝까지 완주하기를 위해 기도해 주시고, 작은 찬양 문화 센터가 만들어 진다면 찬양 콘서트와 한국교회에 필요한 세미나 등을 하고 싶습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그동안 한국교회 목사님들과 성도님들을 통해 받은 사랑을 갚기 위해 꼭 필요한 부분을 찾아 나누어 주는 삶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41년 동안 거리, 숫자, 사례비를 정해서 다녀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또한 그동안 해왔던 제자들 키우는 일과 홀사모와 은퇴 목사님 돕기를 할 것이며, 특별히 가난한 나라의장애인들을 위해 목발, 휠체어 보내기 운동도 계획 중에 있습니다.

[뉴스세븐 기자 mdwpdntm@dreamup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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